발명왕 에디슨과 바다 지금으로부터 175년 전인 1847년 2월 11일 불후의 발명왕 에디슨이 태어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명언도 많지만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는 명언은 우리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학생들을 두신 어머님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발명왕 에디슨이 남긴 명언중의 명언이 아닐까 한다. 우리도 이 명언에서 용기를 얻어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을 통한 가능성을 보고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어려서부터 엉뚱해서 정규 학교를 3개월 밖에 다니지 못하였으니 요즘 말로 튀는 학생중 하나였고 학교생활 적응불량 학생이었던 셈이다. 우리 학교의 환경과 사회 여건이었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반문하게 된다. 그러나 에디슨은 자신의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으로 축음기, 전화기, 백열전구, 영사기 등 무려 1,093개의 발명특허를 가진 불후의 발명왕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의 아이디어가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설립된 회사가 지금도 미국의 유수한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인 ‘GE’이다. 우리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19세기 중반 우리는 당파싸움에 빠져서
◇실장급 승진 수산정책실장 최용석 ◇국장급 승진 인천지방해양안전심판원장 김철홍 ◇과장급 전보 규제개혁법무담당관 홍근형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조사관 김석훈 인천지방해양안전심판원 수석조사관 양진영
진정한 바다의 풍운아, 바이킹 유럽에 바이킹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유럽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엄청나게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바이킹들이 남긴 영향은 엄청나기에 생각해 볼만하다. 이러한 바이킹들에 대한 평가도 매우 다양하다. 바이킹의 원조들인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기 나라 바이킹들은 좋은 바이킹이고 다른 나라 바이킹들이 못된 짓을 한 나쁜 바이킹들이라고 농담 삼아 하기도 한다. 바이킹이라는 말은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에서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협곡이나 계곡을 의미하는 ‘비크 Vik’에 사는 사람들에 유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래된 대표적인 도시가 바이킹들이 건설한 나라인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 이다. 전 세계 수도 중에서 가장 높은 위도에 위치한 수도이다. 그러고 보면 북극권에 있는 많은 도시나 마을이 00비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우연히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바이킹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콜럼부스 보다 500여년 앞선 1,000년경에 이미 발견하고 도착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 바이킹들은 당시에 유럽 북해에 위치한 페로(Faroe
바이킹과 왜구의 5000km 우리에게 바이킹(Viking)은 매우 익숙하다. 놀이공원에 가면 바이킹이라고 스릴 넘치는 그네처럼 생긴 놀이기구가 있어서 일수도 있고 또 바이킹들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그럴 것이다. 물론 그 놀이기구가 바이킹이 타고 다니던 배와 비슷하게 만들어 졌기에 그러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바이킹은 왜구와 같은 해적이나 불한당 같은 이미지 보다도 열혈 탐험가나 모험적인 뱃사람 정도로 보는 것은 아닌지 한다. 그런데 유럽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킹은 당시 유럽에서는 거의 아수라였다. 동양의 왜구와 같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덴마크의 바이킹들이 당시 서양의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왕조를 멸망시키는 등 유럽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맹활약'을 하였다. 자세한 바이킹 이야기 별도의 기회를 갖기로 한다. 그런데 동양으로 눈을 돌려 보면 왜구(倭寇)라는 집단이 있다. 우리 한반도에도 참으로 아주 못된 짓들을 많이 하여 큰 피해를 준 해적이자 반민 반군의 군사집단으로 이미 삼국시대에서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집단이다. 이 왜구들이 저지른 폐해에 대하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해안 누리길과 해양관광 걷기좋은 계절, 봄이 왔다. 겨우내 굳어있던 몸을 풀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는데는 트레킹 만한것이 없다. 우리 주변에 가깝게는 공원이나 냇물 또는 강변을 끼고 초록색 새싹과 갖가지 꽃을 감상하며 걸을 만한 장소는 많이 있다. 한편, 이와는 다른 특별한 경험과 느낌을 주는 해안 누리길은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걸을 때 다른 장소보다는 훨씬 더 지친 몸을 달래고, 마음의 힐링을 크게 얻을 수 있다. 해안 누리길은 해안경관이 우수하고 역사, 문화자원이 풍부해 걷기여행에 좋은 해안길 중 해양수산부가 해양관광진흥을 위해 선정한 길이다. 한국해양재단은 지난 2010년부터 해수부와 함께 해안걷기여행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 공모를 받아 전국해안을 U 자로 연결하고자 선정한 “걷기 좋은 해안길”로 총 58개노선을 지정하였으며,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앱’을 개발하여 58개 해안누리길 노선정보와 주변맛집, 숙박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해안누리길 안내체계구축사업’도 각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 서류심사와 현장심사를 통해 선정하고, 안내표지판과 편의시설 설치에 필요한 예산을 매칭펀드로 제공함과 아울러 디자인
3월에 생각하는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과 진진포포(津津浦浦) 과거 해외에서 열리는 중요한 스포츠중계를 들으면 조금 흥분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안녕하십니까? 전국 방방곡곡에서 계신 국민 여러분....” 이라는 고전적인 표현이 기억이 난다. 만약 이 경기를 일본 아나운서가 중계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표현이 다 같겠지만 ‘전국 방방곡곡에...’가 ‘전국 진진포포에 ..’ 로 바뀔 것이다. 방방곡곡은 한자가 보여주는 의미 그대로 산골 구석 구석이나 골짜기 골짜기를 의미한다. 반면 진진포포는 한자의 뜻이나 느낌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닷가 나루터 나루터 해안 지역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진(津)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에 해당하는 해안가나 강가 지형에 붙여진 것으로 부산진, 강화도의 양화진이나 초지진, 서울의 노량진 등이 그 사례이다. 포(浦) 라는 지명은 주로 어업, 상업 또는 조운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지역이었는데 전남 목포나 인천 제물포, 나주 영산포, 서울 마포 해안가 많은 지명에서 보입니다. 나주 영산포나 인천 제물포의 현재의 위치를 보면 어떻게 바다와 연결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영산포는 영산강을 통해 선박이 드나들던 호남의 대표적인 포구중 하나였기에 왕건의
국해운협회(회장 정태순)와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회장 가삼현)는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경남 창원시마산합포구)실 주최로 3월 2일(목) 오후 2시부터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제2소회의실에서 '해운-조선-금융 상생 국회 정책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중앙대학교 우수한 교수가 우리나라 해운-조선 상생을 위한 무역보험공사의 역할 ∆수출입은행 양종서 박사가 친환경선박 건조 동향 및 확보 대책 등에 대해 발표한 후 중앙대학교 우수한 교수를 좌장으로 패널토의를 가질 예정이다.
3.1절에 생각하는 복지부동과 넙치관료 우리나라의 복지부동 관료 공직자로 현직에 있을 당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바로 ‘복지부동’ 이란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정권 교체기나 어떤 민감한 사안이 부각되면 공직자들이 당연히 할 일을 하지 않고 정치권이나 외부 눈치만 본다며 소극적이며 피동적이라고 공직자를 비판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공직자들의 기본자세가 우선 문제일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직자를 정치권의 하위체계로 생각하는 인식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정치권력이 5년마다 변하는 단임제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일정한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직자들의 기본 속성인 법과 제시된 정책에 따른 집행적 업무성격과 당연히 가져야 할 정치적 중립성과 균형적인 시각을 침해하는 정도에 까지 이르면 공직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국가와 국민들에게도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일을 하는 공직자를 복지부동한다고 타박하기도 하고 소극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자기의 민원을 들어 주거나 정치적 견해를 옹호해주면 적극 행
거문도와 보도 해밀도 19세기 당시 세계의 패권 국가이던 영국은 대륙국가인 러시아의 팽창을 전통적으로 견제하여 러시아의 소위 남진정책을 유럽과 흑해 그리고 극동 지역 등 다방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저지하여 왔다. 극동에서 러시아를 막기 위해 영국이 취한 전략이자 방안의 하나로 한반도에 벌어진 것이 바로 한반도 남단의 여수 남쪽에 있는 섬인 거문도 점령이다. 1882년의 임오군란과 1884년의 갑신정변이라는 회오리를 겪으며 청나라의 입김 속에 들어 있던 고종임금 22년인 1885년 영국은 러시아의 극동에서의 남진정책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삼아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1887년까지 약 2년간 항구를 만들어 해밀턴 항(Port Hamilton)이라 부르고 4-5백 명에 달하는 해군병력을 주둔시켰다. 당시의 영국의 해군 사령관 이름인 해밀턴을 따서 그리 불렀던 것이다. 그 당시 영국은 조선의 영토인 거문도를 점령하면서도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으로 생각하여 조선에는 알려주지도 않고 오히려 청나라와 협상을 했다고 하는데 조선말기 우리나라가 처한 힘없는 약소국의 아픔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의 하나이다. 결국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지 두 달이 넘은 후에야 청나라가 이
한국해운협회와 재단법인 바다의품은 오는 24일 오전11시 여의도 콘래드호텔 3층 파크볼룸에서 ‘공익재단 바다의품 창립 기념행사’를 개최한다.바다의품은 지난해 9월 해운업체들의 기금운영을 위해 설립한 재단법인으로, 초대 이사장에는 정태순 해운협회장이 선출된 바 있다.'바다의품'이란 명칭은 공모를 통해 선정됐으며, ‘한 없이 따듯한 어머니의 품을 기반으로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